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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 - 강길용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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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은 자연 속에서 산소(山所)를 가꾸고 조상을 기리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주인공은 할아버지와 큰아버지의 산소를 찾아 풀을 깎으며 조상과의 추억을 떠올린다. 자연과의 교감 속에서 과거를 회상하고 현재를 살아가는 가족의 모습을 그리며, 산길을 걷는 동안 서로의 정을 나누고 마음을 다독이는 시간을 묘사한다. 산길 촉촉이 젖어 있는 길, 풋풋한 풀 냄새가 코끝 간지르는 길, 이곳이 길이라고 이정표도  없는 길, 그런 길이 깊은 숲 속으로 이어져  있다. 한 젊은이가 가끔 들리는 풀벌레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풀잎들이 발끝에 채이며 신발 위로 이슬방울을 흩뿌린다. 잠시 앉아 그들과  이야기하고 싶어졌는지 멈추어 선다. 어깨에 매달린 풀 베는 기계가 두렵지도 않은지 풀들은 이야기 건네는 젊은이를 반긴다. 간간이 개울이 나타나서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어딘지  모르게 낯익은 얼굴이 비춰진다. 맑고 투명한 물줄기가 잔잔한 소리로 노래하며 흐른다.  발걸음이 가벼워졌고, 멀었던 산소가 눈에 들어온다. 그 어딘가에 혼이 젊은이를 반기고  있는 느낌이 든다. 발걸음을 더 빨리 움직여 다가간다. 언제 보았던가 싶을 정도로 낯선  산소 곁에 멈추어선 잠시 고개를 숙인다. 봉분 위로 이름 모를 꽃들이 무성하게 피어 있다.  푸르게 자라던 시절 젊은이가 구르며 놀았던 잔디는 풀숲에 숨어 있다.  아니 생명을 조금씩 잃어 가고 있다. 조금씩,  그러나 쉬지 않고 번져 오는 잡초의 힘  앞에 무기력하게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요동치는  가슴, 떨리는 손길로 할아버지 산소로  다가간다. 그 위로 이슬방울이 차갑게 느껴진다. 마치 무덤 주인의 눈물 같다. 어쩌면 무심히 두고서 멀리 사라졌다가 일년에 단 한번 찾아오는 손자 녀석이 야속했을 법하다. 그래서 가슴을 흐르던 눈물을 이슬로 내뿜고 있었던 건 아닐까. 심장의 뜀박질 소리가 들린다.  풀깎이에 연료를 넣고 시동을 건다. 요란한 엔진 소리가 사정없이 고막을 내갈긴다.  풀들이 놀라고, 메뚜기나 풀벌레들도 단잠에서

아름다운 삶이란 - 강길용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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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삶이란"은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작은 행복과 보람을 이야기한다. 택시 기사와의 대화를 통해 삶의 소박한 가치와 자연의 소중함을 강조하며, 인간관계와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선 물질적인 것보다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교훈을 준다. 결국 아름다운 삶이란 큰 성취나 화려함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느끼는 소소한 행복과 만족을 찾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아름다운 삶이란 늦잠을 잔 며칠 전의 일이었다. 오전에 안양의 한 단체를 찾아가 탐방기사를 쓰기로 약속이 되어 있던 터라 허겁지겁 카메라와 녹음기를 챙겨 가방에 넣고 집을 나섰다. 마침 서울에서 온 택시가 있었다. 서울까지 가서 전철을 갈아 탈 생각이었다. 한참을 가다가 생각을 바꿔서 안양까지 택시를 타기로 했다.  "아저씨 안양까지 갑시다."  목적지만 퉁명스럽게 밝히고 요금이 얼마인지는  묻지도 않았다. 도착해서 달라는  대로 줄 생각이었다.  "평소에 안양까지 얼마에 가셨어요?"  한참을 가다가 기사 아저씨가 먼저 물어왔다.  "네, 자주 다니질 않아서 잘 모르겠는데요"  "손님들이 타고 제일 먼저 묻는 것이 얼마에 갈것이냐고 묻는데 참 이상하시네요."  "그렇게 물으면 아저씨는 어떻게 대답하죠?"  "시외로 나가니까 왕복 요금을 받는다고 이야기를 하지요."  "네 그러시군요. 그럼 남들 하는대로 저도 드릴게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동안 택시는  세곡동에 이르렀다. 세곡동 사거리에서  우회전을 한 기사 아저씨는 "아마 가장 가까운 길이 이곳일 거예요"라며 더  가까운 길을 아시면 이야기해 달라고 했다. 안양까지 늘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던 나로서는 어떻게 가는 길이 가장 빠른 길인지를 알턱이 없었다. 그저 약속한 시간에 도착하기만을 바란다고 대답해 주었다.  차는 수서를 돌아서 양재대로를  향하여 달리고

요염한 한강 - 강길용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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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은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요염하고도 깊은 인상을 남겼으며, 한낮의 더운 여름에는 아낙들의 빨래터, 아이들의 놀이터, 어른들의 목욕터로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한강은 역사적으로 병사들의 피와 시인의 음율, 연인들의 사랑 이야기, 고통의 눈물 등 다양한 감정을 담고 있습니다. 밤이면 한강은 불야성으로 변하며, 사람들의 사랑과 추억, 여유로움을 품고 흐릅니다. 이러한 한강은 서울의 삶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존재로 묘사됩니다. 요염한 한강 누군가 한강을 가리켜 '요염하다'고 말한다. 그  말을 들으며 무엇이 한강을 요염하게 하고 나의 기억과 꽤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한강을 건넜고, 그 숱한 세월 푸른 빛 곱게 입고 흘러흘러 서해로 떠난 흔적을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한낮의 뜨거움이 몰아치는 옛날 어느 여름엔 아낙들이 빨래를  하고, 아이들은 모여서 물놀이를 즐겼고, 어른들은 고기잡이나 목욕했을 한강, 수많은 병사들이 적과 싸우다 죽음을  피로 받아 흘려 보냈을 한강, 어느 시인의 입에서 불려지던  멋드러진 음율을 잔뜩 머금은 한강, 헤아릴 수 없을 만치 많은 연인들이 속삭인 사랑이야기를 엿들었을 한강, 고통이 가슴을 찢는 날이면 찾아온 이의 마음을 적셔주었을 한강, 기적(奇蹟)을 만들어 내던 어느날 잘 쌓은 제방위로 예쁘게 자란 꽃들이 나비를 불러 노는 한강!  쇳소리 내며 달리는 전동차, 질주하는 자동차들의 경주, 그  모습을 보며 잠시 눈감아 본다. 수많은 사연과 세월들의 외침, 노랫소리가 꿈이나 환영처럼 스쳐지나 갔다. 환청처럼 머리를 흥겹게 하고 지나는 기쁨의 환성도 들렸다. 한강은 그 모든  것을 검푸른 모습 위로 아리랑 곡조로 만들어 띄우며 흐른다. 잔잔한 흐름 속으로 깊고 고독한 삶을 길게도 이어왔던 한강이 뿜어내는 굿거리 장단에 나의 영혼이 어우러져 춤을 추고  있다. 오랜 세월을 흐르며 그 곁에 터전을 마련한 사람들에게 희망이었다가  절망이기도 하였을

오후의 산책 - 강길용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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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다양한 모습과 사람들의 일상을 묘사합니다. 명동과 종로를 산책하며 경험한 복잡한 도시 풍경, 땡볕 아래서의 피로, 그리고 여러 사람들과의 우연한 만남을 통해 서울의 다채로운 삶을 그립니다.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람들, 비둘기를 쫓는 아이들, 구걸하는 남자, 그리고 거리의 풍경을 생생하게 담아냅니다. 산책 중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과 행동을 통해 서울의 복잡하면서도 활기찬 일상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오후의 산책 서울의 얼굴은 날마다 변한다. 이쁘게도 변하고 때로는 흉물스럽게도 바뀐다. 화려한 네온사인이 있는 밤과 썩은 냄새가 코끝을 마구 찔러대는 뒷골목이 공존한다. 싸우는 사람들이 많았다가, 웃고 즐겁게 악수하고 서로를 용서하는 이들이 함께 한다. 그 가운데서도 서울의 중심이었던 명동과 종로거리는 어느 시간이나 볼거리를 늘어 놓은 시장과 같다. 재래시장이면서 백화점이고, 부자이기도 하고 게걸스런 거지와도 같다. 그것이 서울의 서로 다른 여러 얼굴이다.  그런 거리를 걸어 보았다. 탑골공원 앞에서 종묘까지, 그리고 길 건너 세운상가 앞에서 종로서적까지. 이리저리 마냥 두리번 거리며 무더운 한낮에 산책을 나섰다. 어깨에 가방 하나 둘러메고 말이다. 사람들의 달구어진 몸짓이 부대끼며 내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발걸음이나 발자국 소리도 제각각이다. 뒷모습도 다르고, 머리카락의 모양이나 굵기도 틀리다. 그러나 모두들 바빠 보인다. 다만 서로의 어깨를 감싸안고 극장으로 들어가는 젊은 연인들이나 할 일없이 서성이는 구걸꾼들이 여유로울뿐이다.  땀이 흐르는 것을 식히기 위하여 혼란스럽기만한 종묘공원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아스팔트로 덮인 바닥에서 솟구치는 열기를 맞으며 여러 표정들을 살핀다. 아이들이 한움큼 비둘기 모이를 던진다. 비둘기들이 떼지어 모였다. 아이들을 따라간다.  아이들은 그 모습이 신기한지 달아나며 조금씩 던져 준다. 어느덧 모이를 모두 뿌린 모양이다. 그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비둘기들이 파드득 날아서 나뭇가지에 앉는다. 이 나무 저 나무를 옮겨

여자의 눈물 - 강길용 수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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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할 수필은 여자의 치장과 아름다움에 대한 글입니다. 청소년들은 친구나 연예인을 따라 꾸미고, 성인은 독특함을 추구합니다. 하지만 외모에 의존하지 않고 내면의 아름다움을 지닌 친구가 있습니다. 젊음을 잃은 후 장식에 의존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시인 홍윤숙은 "장식론"에서 표현했습니다. 주부들은 육아와 가사로 젊음을 잃고, 잔주름과 상실감에 눈물을 흘립니다. 젊음의 순수한 아름다움은 어떤 장식으로도 채워질 수 없음을 강조합니다. 여자의 눈물 길거리를 나서면 나이가 많거나 어리거나 할 것 없이 치장(治裝)에 모든 사람들이 익숙해져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여자들은 물론이고 남자들도 자기를 가꾸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사람이기 때문에 더 아름답게 보이고, 더 멋있게 보이려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 아닐까 한다. 그렇지만 그 방식만은 시대에 따라서, 나이에 따라서 제각각이다.  청소년들의 꾸미기는 한층 요란스럽다. 친구들의 모습을 보고 멋있다고 생각되거나, 예쁘다고 생각되면 거의 그대로 모방한다. 때로는 연예인 따라 하기도 하고, 주위에 있는 성인들 가운데 마음에 드는 옷이나 머리 모양을 보면 언제든지 모방하고야 만다. 물론 경제적인 여유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렇지 못하면 그냥 마음속으로만 품고 살뿐이다.  나이가 들고나면 이러한 모방의 심리는 조금 다르게 나타난다. 우선 다른 사람과는 무언가 다른, 독특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는다. 다른 사람과 다르게 보이기 위해, 보다 많은 돈과 시간과 정성을 들인다. 음식점 출입이나 커피숍 출입도 보통 사람들이 가는 곳보다는 느낌이 살아 있는 곳을 주로 찾는다. 옷을 입는 일도 달라진다. 무조건 모방에서 몸의 맵시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골라 입는다. 얼굴에 화장도 하고, 손가락엔 반지도 몇 개 낀다. 하루에 몇 번씩 거울을 들여다보고 때로는 그 속에서 백설공주 같이 아름다운 얼굴이 화들짝 나타나 놀래 주기를 꿈꾸기도 한다.  이렇게 치장에 열심인 시대적인 분위기와는 다른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아침을 더 아침답게 하는 미소 - 강길용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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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출근길 지하철에서 만나는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과 사무실에서 만나는 야쿠르트 아주머니의 미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작가는 지하철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관찰하며 그들의 삶을 공감합니다. 특히 사무실에 매일 찾아오는 야쿠르트 아주머니의 진솔하고 밝은 미소에서 큰 위안을 얻습니다. 이 미소는 작가에게 일상의 스트레스를 씻어주고 희망을 주는 힘이 됩니다. 글은 평범한 일상 속 작은 순간들이 주는 기쁨과 위로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아침을 더 아침답게 하는 미소 아침이면 거의 매일 출근이란 것을 한다. 가끔 출근길의 전철안이 어수선하게 느껴진다.  그 속에서 함께 가는 사람들의 얼굴은 하나 같이 힘겨워 보인다. 그들 중에는 앉아서 열심히 책을 읽은 사람, 신문 넘기는 소리로 침묵을 깨는 사람들, 간밤에 무얼 하였는지 코를 골며 자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 모든 모습들이 아름답게 사는 작은 사람들의 얼굴로 보인다.  내 눈에 그렇게 보이는 것은 그들의 모습에서 자화상(自畵象)을 찾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늘 시달리며 살아야 하는 보통 사람들, 우리 나라 사람들의 대부분이 가지고 있는 자기 차 하나 없이 사는 사람들, 박봉에 시달리며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 집에 있는 가족들을 생각하며 속으로 차오르는 분노마저 울컥울컥 삼키고 사는 사람들, 그들이 타고 다니는 지하철에서 숙연(肅然)해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보통 사람들의 가슴에 고스란히 안겨 사는 소박함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회사에 나가는 날이면 늘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요즘 같은 장마철이면 지하철 안은 더 소란스럽다.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 우산을 들고 옆 사람에게 흐를까 조심하는 눈동자들, 곱게 차려입은 옷으로 줄줄 흐르던 빗물이 떨어졌다고 힐끗거리는 아가씨의 얼굴, 또 어디선가 발을 밟았다고 고함치는 소리, 이런 소란들은 아마도 비좁은 공간(空間)에서 자신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진솔한 표현이 아닐까 한다. 그것은 작은 사람들의 꿈이기도 하다. 보다 넓은 곳에서 보다 큰 차를 타고, 보다

함께 사는 이유 - 강길용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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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사는 삶을 한쪽 다리로 걷는 것에 비유하며, 그 어려움을 설명합니다. 타인과의 관계, 특히 부부 관계나 타인에 대한 배려가 우리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고 주장합니다. 전철에서 본 장애인의 모습을 통해 서로 의지하고 도움을 주는 것의 가치를 깨닫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함께 살아야 하는 이유는 서로 의지하고, 쉬어갈 수 있으며, 더 아름답고 안정된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함께 사는 이유 며칠 전 이웃 사무실에 들렀다. 그곳은 친구의 아내가 근무하고 있었다. 내가 들어가자 반갑다는 표정으로 맞는 그녀의 표정은 한없이 밝아 보였다. 차를 한잔하면서 결혼 이후의 삶을 이야기하는 그녀의 표정에서 함께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전 남편이 옆에 없으면 잠을 잘 수 없어요."  "그만큼 사랑한다는 뜻이 아니겠어요. 아주 좋은 일이네요."  "사랑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늘 그래요. 가끔 남편이 늦으면 올 때까지 혼자 있게 돼요. 기다리게 하는 남편이 원망스럽기도 하거든요."  그녀와 헤어져 나의 사무실로 되돌아왔다. 자리에 앉아서 일을 처리하다 퇴근을 했다. 퇴근길에 만나는 사람들은 늘 나의 마음을 살찌우고 있다. 언제나 그들의 표정과 몸짓에서 내 삶의 좌표가 하나씩 찍혀지기 때문이다. 내가 사람들 속에 사는 이유다. 사람들이 없으면 나뭇잎이 모두 떨어진 겨울나무 같은 느낌을 받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술 취한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고, 전철 안에서 자리를 양보하는 사람들도 보고, 그렇지 않은 젊은 사람들도 만난다. 가끔은 어른들의 눈치를 살피다 억지로 일어서서 양보하는 이들도 보게 된다. 그날은 한 장애인이 자기보다 힘들어 보이는 할아버지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있었다. 자신은 목발을 짚은 채 불안한 모습으로 전철 손잡이를 잡고서 말이다.  그 옆에 대학생쯤으로 보이는 남자가 있었지만 힐끔 고개만 돌렸다가 이내 눈을 감는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안타까운

오늘 내리는 봄비 - 강길용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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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IMF 시기의 경제적 어려움과 그로 인한 사회적 분위기를 봄비에 비유하여 표현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실직과 불안감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모습을 묘사하며, 현실 도피의 수단으로 백일몽을 꾸는 이들의 심리를 탐구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내리는 봄비 겨울엔 눈이 많이 내렸다. 그러던 것이 어느덧 비로 바뀌어 꽤 자주 내린다. 얼마전 내렸던 비를 봄비라고 불렀던 기억이 난다. 봄비라는 말 한마디에 희망을 담고 꿈을 담으며 전화로 인사를 나누어 보았다. 그러나 여전히 밝은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었다.  "어떻게 지내냐"는 물음에 "요즘 죽겠어요"라는 말을 듣고나면 왠지 기분이 쓰라리다. 타인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어느덧 자신의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불현 듯 드는 모양이다.  아직은 버텨낼만 하고, 또 버텨낼 자신도 있겠지만, 자신의 일인 것처럼 조심스럽다. 그 뒷면에는 엄살을 떨어야 손을 내미는 사람이 덜할 것이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직이나 실업에 대한 불안감이 가장  큰 이유일  게다. 언제부턴가 의미도 모른 채 IMF를 들먹이며 깍쟁이짓을 하는 아이들이 있는데 어른들은 오죽할까.  우리들의 생활 습관을 여지없이 바꿔 놓으며, 새로운 삶의 패턴을 갖기를 너그러운 듯 비웃는 듯 몰아 붙이는 IMF라고 하는 알파벳 세글자는 올 한해 동안 많은 변화를 가져 올 것같다. 아이들의 말에서부터 어른들의 움츠린 어깨위에 올려지는 것은 물론이다. 작은 것 하나라도 소중히 해야 한다는 씀씀이에 대한 가치관을 송두리째 뒤바꿔 놓는다.  어느 한쪽에서는 소비를 하지 않아서 우리 나라 경기가 위축되면 "공멸한다"는 위험론을 들고 나와 위협도 해 보지만 이미 움츠러든 소비는 햇살 앞에서도 기지개를 펴지 않는다. 또 봄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약동하는 마음의 봄 소식을 전하지 않는다. 마음은 이미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고 있지만, 현실은 여전히 제자리 걸음인

사랑을 여는 한 해 - 강길용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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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본질과 중요성은 무엇일까요? 사랑은 시간과 인내를 필요로 하며, 나눔과 용서를 바탕으로 합니다. 우리는 올해도 이기적인 사랑이 아닌, 타인을 배려하고 함께하는 진정한 사랑을 실천하기를 다짐합니다. 작은 일상 속에서 서로 어울리며 춤추듯 살아가기를 희망합니다. 사랑을 여는 한 해 어떤 사람이 읊어 놓은 사랑에 관한 명언 열 가지가 있답니다.  '사랑이란 시작은 있지만 완성은 없다/ 첫사랑이란 두 번째 사랑을  준비하는 것이며 두 번째 사랑이란 첫사랑에 대한 후회뿐이다/ 가장 완전한 사랑은 세월의 심판을 받는 사랑이다/ 사랑은 한없이 용서해 주는 행위이고,  이윽고 습관이 되어 버리는  부드러운 시선과 같다/ 사랑은 눈물처럼 눈에서 솟아나 가슴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사랑이란 말은 하나지만 언제나 같은 뜻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사랑은 서로 마주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둘이서 같은 방향으로 밖을 바라보는 데 있다/  사랑은 시간을 지나가게 한다.  시간도 사랑을 지나가게 한다/ 사랑 안에서 바보가 되어 보지 못한 사람은 사랑 안에서 지혜로운 자가 결코 되지 못한다/ 사랑은 파괴보다 변화를 더 두려워한다'  이 열 가지의 의미를 하나씩 뜯어보면 그다지 중요하게 다가오질 않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한꺼번에 보면 그 속의 깊이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늘 사랑이라는 것을 받기만 하는 것에서 기쁨을 느끼려 합니다. 주는 것의 어여쁨이나 아름다움을 만나는 즐거움은 뒤로하기 때문에 열 번째처럼 파괴보다 변화를 더 두려워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합니다.  눈으로 마주보면서 나오는 것이지만 가슴으로 들어가 서로가 아닌 하나가 될 수 있을 때 사랑의 가치는 무엇보다 소중하지만, 눈에서 시작하여 촉각으로 미각으로 옮아간다면 한낱 풋사랑의 즐김 이외의 의미를 가질 수 없습니다. 또한 참고 기다리는 인내가 없다면 공허한 나날만 쌓아 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사랑을 하기가 무척이나 어려운 모양입니다.  세월의 심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

다시 걸음마를 배우자 - 강길용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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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어려움, 정치인과 권력층의 부패, 가족 해체 등의 문제로 인해 희망이 사라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말고 갓난아이처럼 새로운 시작을 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어린 시절의 희망과 의지를 되찾아 다시 일어서 힘차게 웃을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다시 걸음마를 배우자 겨울 날씨 답지 않게 영상의 기온을 유지하고 있다. 예년 같으면 따뜻한 분위기를 피부로 절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올해의 겨울이 보기 드문 온기(溫氣)로 가득함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현실은 실로 차가운 동토(凍土)와 다름이 없다. 숱한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어머니와 딸들이 험난한 세상 속으로 휘말리고 있다. 마음의 겨울은 계절의 변화에 따른 겨울의 추위보다 더 절박하게 동결(凍結)로 다가온다.  또 희망찬 전주곡을 울리며 시작했던 대통령 당선자의 나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오랜만에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를 이루었다는 자부심도 얼어붙은 가슴을 녹이지 못하고 있다. 화려한 경제지표로 장식하던 방송과 신문의 치장도 볼 수 없다. 어디를 둘러봐도 희망이라는 단어를 찾아지지 않는다. 언제 자신이 거리로 내몰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춤츠러든 가슴은 좀처럼 열릴줄 모른다. 서로가 제 몫을 챙겨 곳간을 늘이려 발버둥친다.  이렇게 허망한 가슴을 들여다보면 어김없이 약속과 믿음이 비어있다. 정부는 날마다 대책을 내 놓는다고 하지만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만한 이유는 충분히 있다. 어렵다는 말을 하면서, 허리띠를 졸라매라는 말을 하면서, 정작 허리띠를 졸라매야 할 주체들은 여전히 제멋대로 행동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는 어떤 사람들인가.  남들이야 길거리에서 굶주리며 죽어 가든지, 직장을 잃어 방황하는 사람들이 늘어가든지 '내 알 바 아니라'는 듯이 흥청거리는 부류들이 있다. 가장 큰 책임을 느껴야 할 고위 공무원들, 국회에서 법률심의 하나 제대로 못하고 언성만 높였던 한량들, 남의 아이는 절망에 빠져 있거나 말거나 내 아이만 잘 되면 된다는 식의 이기적이고 오

낙엽을 밟으며 문득 - 강길용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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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묘미는 낙엽을 밟으며 산행을 즐기며 듣는 바스락 소리일 것입니다. 자연 속에서 우리는 삶의 의미를 찾고 기쁨을 찾을 수 있습니다. 낙엽이 지난 세대가 후대를 위해 거름이 되듯, 우리도 열심히 살아가며 후세를 위한 품앗이를 해야 한다는 교훈을 전하고 있습니다. 낙엽을 밟으며 문득 짙푸른 여름을 성큼 지나 누렇거나 갈색으로 타 들어간 잎사귀 몇 개만 나부끼는 가로수가 싸늘함을 느끼게 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가을이 왔었나 보다. 앙상한 가지가 가을은 이미 떠났음을 알려준다. 더불어 사람들의 발걸음도 무척 빨라졌다.  종종걸음에 옷깃을 세운다. 움츠러든 어깨, 호주머니에 양손을 넣고 가는 우스꽝스런 모습이 종종 눈에 들어온다.  두툼한 무스탕의 옷깃에 탐스런 털이 바람에 춤을 춘다. 바야흐로 겨울이다.  어제는 늦잠에서 부시시 깨어나 대충 씻고 수락산을 다녀왔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산을 오르는 설레임이 앞서간다. 차분한 발걸음을 옮겼다. 주위엔 숱한 산사람들이  울긋불긋한 차림으로 삼삼오오 짝을 지어 걷고  있다. 땀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고, 낮술을  마신 탓인지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어른들도 보인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그 험난한 산길을 잘도 걷는 어린아이들의 모습이 참으로 귀엽다.  그런 사람들 속에 끼어 빈 손, 빈 몸으로 오르는 나의 모습이 보인다. 가끔 내 발 밑에서 바스러지는 낙엽의 느낌이 좋다. 참나무나 단풍나무, 개버즘나무의 잎사리들이 겹겹이 쌓여 등산로의 가장자리를 채우고 있다. 그것을 밟을 때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난다. 그  소리에 취해 자꾸 가장자리로만 발길이 옮겨진다. 바람이 휭하니 불었다. 낙엽들이 이리저리 흩어진다. 그러다간 금새 다른 곳에 자리를 틀고 쌓인다.  그 뒤로 먼지도 풋풋이 날리다가 사람들을 휘감아 돌고는 낙엽 위로, 바윗돌 위로, 나무  위로 또 내려와 쌓인다. 그럴 때마다 등산객들은 멈칫거리며 고개를 돌려 먼지와 맞바람을 피한다. 그 속엔 나도 끼여 있음을 느낀다. 한 무리의 웅성거림이 바위

가을은 감성만의 계절인가 - 강길용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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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감성이 넘치는 계절이지만, 지나친 자기 노출이나 숨기기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문학 작품에는 적절한 감성과 이성의 조화, 예술적 정신과 인간에 대한 애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면서, 허술한 감성의 낙서가 아닌 진지한 결실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가을은 감성만의 계절인가 이제 가을의 문턱을 넘고 있다. 이 시점에서 게시판을  찾아다니며 느끼는 것은 한여름이나 겨울의 어느 때보다 많은 글들이 올라와 읽혀지기를 기다리는 것을 보면 내 가슴마저 벅차 오른다. 그러나 자신의 감성이 뛰어남을 자랑하듯이 한번에 수 편씩의 시를 올려놓은 것을 보면 그들의 탁월한 감성에 놀라면서도 실망감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감성이라는 것은 심리적인 현상이다. 그 심리적인 변화가 시라는 것으로 나타나고, 짧은 생각으로 표현되고 수필이라는 형식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감성이 가장 강하게 나타나는 계절은 봄과 가을이다. 그 가운데서도 가을은 조락의 계절이라 그런지 사랑에 대한 것, 삶의 고독에 관한 언어들이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그러나 자신들의 언어 속에 나타난 것은 개인의 감정이 아니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혹자는 삶에 대한 보편적 진리가 담긴 철학을 적은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주가 지니고 있는 질서를 간직한 것이라고 항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 이도 저도 아닌 부류에 속한다. 그러나 시를  쓰면서 자연이 가지는 어떠한 법칙을 찾아내려고 애를 쓰고, 그것을 통하여 내 삶을 반성한다. 그 속에서 차곡차곡 쌓이는  감성의 속앓이도 한다. 더불어 내가 가지지  못한 꿈을 그려보기도 한다. 때로는 괴로워  미칠 것 같은 시간들도 있고, 때로는 너무나 기분이 좋아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상태도 된다.  이것은 어쩌면 내 삶이 궁핍해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일희일비(一喜一悲)하는 속에서 어줍잖은 무언가를 찾아 헤매야 하는 삶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작은 물방울 하나 제대로 스며들지 못하게 촘촘한 틀어박힘의 포도송이처럼 그렇게 옹골찬 삶이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