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감성만의 계절인가 - 강길용 수필

가을은 감성이 넘치는 계절이지만, 지나친 자기 노출이나 숨기기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문학 작품에는 적절한 감성과 이성의 조화, 예술적 정신과 인간에 대한 애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면서, 허술한 감성의 낙서가 아닌 진지한 결실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가을은 감성만의 계절인가 - 강길용 수필



가을은 감성만의 계절인가



이제 가을의 문턱을 넘고 있다. 이 시점에서 게시판을  찾아다니며 느끼는 것은 한여름이나 겨울의 어느 때보다 많은 글들이 올라와 읽혀지기를 기다리는 것을 보면 내 가슴마저 벅차 오른다. 그러나 자신의 감성이 뛰어남을 자랑하듯이 한번에 수 편씩의 시를 올려놓은 것을 보면 그들의 탁월한 감성에 놀라면서도 실망감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감성이라는 것은 심리적인 현상이다. 그 심리적인 변화가 시라는 것으로 나타나고, 짧은 생각으로 표현되고 수필이라는 형식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감성이 가장 강하게 나타나는 계절은 봄과 가을이다. 그 가운데서도 가을은 조락의 계절이라 그런지 사랑에 대한 것, 삶의 고독에 관한 언어들이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그러나 자신들의 언어 속에 나타난 것은 개인의 감정이 아니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혹자는 삶에 대한 보편적 진리가 담긴 철학을 적은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주가 지니고 있는 질서를 간직한 것이라고 항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 이도 저도 아닌 부류에 속한다. 그러나 시를  쓰면서 자연이 가지는 어떠한 법칙을 찾아내려고 애를 쓰고, 그것을 통하여 내 삶을 반성한다. 그 속에서 차곡차곡 쌓이는  감성의 속앓이도 한다. 더불어 내가 가지지  못한 꿈을 그려보기도 한다. 때로는 괴로워  미칠 것 같은 시간들도 있고, 때로는 너무나 기분이 좋아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상태도 된다. 


이것은 어쩌면 내 삶이 궁핍해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일희일비(一喜一悲)하는 속에서 어줍잖은 무언가를 찾아 헤매야 하는 삶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작은 물방울 하나 제대로 스며들지 못하게 촘촘한 틀어박힘의 포도송이처럼 그렇게 옹골찬 삶이 아니라 가뭄에 콩 나듯 듬성듬성한 생각들로 시간을 보내고 있기 때문에 느끼는  자괴감이기도 하다. 또한 자괴감을 시라는 형식으로 표현하고, 수필이라는 것으로 달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리고 게시판에 올려진 수많은 감성의 탈춤을 생각해 본다. 


가을이라는 계절과 시라는 형식의 문학 장르는 꽤 많은 연관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예를 들면 굉장한 감성과 상상력을 소유한 이는 하루에 몇 편씩의  시를 양산해 낸다. 그리고 버겁게, 즐겁게 게시판에 올려놓고 지나는 나그네들의 시선을 끌기를 기다린다. 시를 써서 게시판에 올려놓는다는 것은 어쩌면 쇼윈도우 속의 물건이나 반나체로 손님을 기다리는 반나체의 창녀와 같아 보인다. 누군가가 엿보길 바라고, 그 속에서 자신의 몸이  선택되어지기를 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발가벗겨진 자신을 부끄러워하면서도 발가벗겨지기를 바라는, 이중성을 가지고 글을 올려놓고 날마다 기웃거리며 바라보는 것은 아닐지. 


또한 철저한 자기 숨기기를 시도할 수도 있다. 모든 사물들이 하나씩 결실을 앞두고 노랗게 또는 자기만의 변색을 거듭하는 가운데 자신의 벗겨진, 고독감을  숨기기 위하여 가상의 공간에 글을 올려놓고 갇힘에서 자유롭고자 하는 또 하나의 갇힘을 만들어 내고 있을 수도 있다. 


둘 중에 어떤 것이 되었건 간에 일단 타인의 손을 거쳐 읽혀지게 되면 조각 조각의  편린들로 하나의 조합을 이루게 된다. 그 조합을 통하여 그 사람의 삶은 독자들에게 투영된다. 그럴 때 진정한 자신이 아닌 왜곡된 자신으로 보여질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자기를 벗으려는 사람이나, 자기를 철저히 숨기려는 사람 할 것 없이, 타인의 눈과 감성에는 왜곡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야기가 샛길로 빠진 감이 있다. 그러나 이 글을 통하여 하고 싶은 말은 가을에 감성이 넘쳐흐르더라도 절제할 수 있는 힘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감성이 넘치면 발가벗겨진 자기를 보이는 것이고, 그것이 극도로 자제되면 자기 숨기기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가끔 올려진 시에서, 또는 수필에서 극도로 자기  벗기기에 나서는 경우를 본다. 또 철저히  자기 숨기기에 몰두한 글을 보게 된다. 따라서 시를 쓰고 수필을  쓰는 사람이라면 그 두 가지를 적절히 조화시켜야 한다. 


나는 한쪽으로 치우친 글을 좋아하지 않는다. 적절한 감성과  이성이 더불어 함축적으로 나타나는 빼어난 글을 좋아한다. 독자를 의도적으로 어렵게 하는 것이나, 독자를 너무 쉽게 생각하여 생각나는 대로 낙서와 같은 글을 긁적거려 놓은 것에 대해서도 강한 반감을 가지고 있다. 혹자는 이러한 나의 생각에 대하여 강한 비판을 가할지도 모른다. 비판을 받는 것, 또한 당연하다. 그래야 나라는 존재가 보다 성숙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가을의 게시판에서 만나는 감성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렇지만 단지 생각나는 대로 적은 글들, 낙서에 불과한 글들, 이러한 글들이 한적한 찻집에서 혼자 차를 마시며 메모지를 빌어 몇 자 긁적거려 보는 수준을 뛰어 넘지 못할 때  감성만큼이나 슬프다. 혼자만의 감성이 사라지면 금새 휴지통으로 들어가야 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리라. 


낙엽의 부스러짐만큼이나 쉽게 깨지는 감성들을 적어서 말초신경을 자극하거나 튀는 제목으로 겉 포장을 한 글들도 많이 보인다. 그렇게 하고  싶으면 차라리 일기장을 펼쳐서 혼자만의 글을 쓰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한다. 왜냐하면 문학이라는 것은 감정의 유희나 낙서, 더 나아가 독자를 기만하는 것에 본질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학은 아름다운 형식, 그리고 빼어난 표현으로 사물을 인지하고  설명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감동과 함께 삶을 살찌우게 하는 데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를 깎는 석공의 땀과 인내, 그리고 예술적 혼이 배어 날 때까지 다듬어 가는 진지한  희생이 필요한 것이다. 또 인간에 대한 따뜻한 애정이 있어야 한다. 그럴 때 가을이라는 계절에 담긴 감성과 어우러져 쾌락주의의 허허벌판이 아닌 결실로 가득한 들판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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