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더 아침답게 하는 미소 - 강길용 수필
이 글은 출근길 지하철에서 만나는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과 사무실에서 만나는 야쿠르트 아주머니의 미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작가는 지하철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관찰하며 그들의 삶을 공감합니다. 특히 사무실에 매일 찾아오는 야쿠르트 아주머니의 진솔하고 밝은 미소에서 큰 위안을 얻습니다. 이 미소는 작가에게 일상의 스트레스를 씻어주고 희망을 주는 힘이 됩니다. 글은 평범한 일상 속 작은 순간들이 주는 기쁨과 위로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아침을 더 아침답게 하는 미소
아침이면 거의 매일 출근이란 것을 한다. 가끔 출근길의 전철안이 어수선하게 느껴진다. 그 속에서 함께 가는 사람들의 얼굴은 하나 같이 힘겨워 보인다. 그들 중에는 앉아서 열심히 책을 읽은 사람, 신문 넘기는 소리로 침묵을 깨는 사람들, 간밤에 무얼 하였는지 코를 골며 자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 모든 모습들이 아름답게 사는 작은 사람들의 얼굴로 보인다.
내 눈에 그렇게 보이는 것은 그들의 모습에서 자화상(自畵象)을 찾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늘 시달리며 살아야 하는 보통 사람들, 우리 나라 사람들의 대부분이 가지고 있는 자기 차 하나 없이 사는 사람들, 박봉에 시달리며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 집에 있는 가족들을 생각하며 속으로 차오르는 분노마저 울컥울컥 삼키고 사는 사람들, 그들이 타고 다니는 지하철에서 숙연(肅然)해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보통 사람들의 가슴에 고스란히 안겨 사는 소박함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회사에 나가는 날이면 늘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요즘 같은 장마철이면 지하철 안은 더 소란스럽다.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 우산을 들고 옆 사람에게 흐를까 조심하는 눈동자들, 곱게 차려입은 옷으로 줄줄 흐르던 빗물이 떨어졌다고 힐끗거리는 아가씨의 얼굴, 또 어디선가 발을 밟았다고 고함치는 소리, 이런 소란들은 아마도 비좁은 공간(空間)에서 자신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진솔한 표현이 아닐까 한다. 그것은 작은 사람들의 꿈이기도 하다. 보다 넓은 곳에서 보다 큰 차를 타고, 보다 편하게 살고 싶어하는 꿈 말이다.
이런 저런 사연을 담은 전철에서 내려 사무실에 들어가 하루를 시작한다. 걸려 온 전화를 받고, 전화 벨 소리에 귀를 쫑긋 세우기도 하고, 때로는 목청을 높이며 일에 몰두한다. 그리고는 회의를 하고, 각자의 일을 찾아 사무실을 나간다. 후배들이 모두 나간 사무실은 늘 썰렁하다. 수시로 걸려 오는 전화 벨 소리만 없다면 아마도 으스스한 느낌마저 들지도 모른다.
분위기가 이렇게 가라앉을 즈음이면 어김없이 방문객 한사람을 만난다. 노란 모자를 쓰고, 노란 상의를 입은 모습으로 당당하게 들어서는 아주머니, 한 손엔 바구니 하나에 담은 우유를 들고 있고, 하얀 장갑을 낀 다른 한 손엔 언제나 매치니코프 하나가 들려 있다. 사장실로 들어갔다 나오면 내게로 온다. 그럴 때면 나는 아주머니를 향하여 엷은 미소를 보낸다. 아주머니도 그렇게 맞웃음을 던져 준다. 6백 원 하는 우유가 싱그럽기도 하지만 아주머니의 얼굴에 담겨진 미소가 더욱 아름답다. 싱그럽다. 늘 보는 미소지만 매일 다르게 보인다. 그렇다고 흔히 말하는 예쁜 얼굴도 아니다. 그저 주변에서 늘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어머니들의 얼굴이다.
그렇게 평범한 얼굴이 나를 즐겁게 하는 이유는 무얼까. 왜 아주머니를 만나면 아침이 싱그러워질까. 한 4년 동안 이런 궁금증을 풀기 위해 많은 생각을 해 보았다. 하지만 쉽게 '이것이다'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름대로 내린 결론, 그것은 자연이 주는 순수함과 순박함이 맑은 나로 만들어 주었다는 것이다. 또 거짓없이 웃을 수 있는 진실함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신이 지니는 절대적인 진실이 아니라 인간적인 진실 바로 그것이었다.
내가 처음 아주머니를 만난 날부터 꺼리낌없이 당당하게 들어오곤 했다. 문 여는 소리만으로도 그 아주머니임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발걸음도 무척 빠르고 경쾌하다. 어느 의류 회사의 광고처럼 '바람소리'가 난다. 문을 닫는 소리도 작지가 않다. 그런데도 싫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그 아주머니가 주는 다음 선물인 미소 때문일 것이다. 그 미소 속에는 거짓 없는 반가움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풋풋함이 담겨져 있는 미소, 그 하나로 아침에 쌓였던 기분 상한 일들이 말끔히 가신다.
"전 아주머니를 보면 기분이 무척 좋아져요"
며칠 전 나는 드디어 아주머니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건넸다.
"그건 저도 마찬가지 인걸요?"
아주머니는 대답을 하며 또 한 번 싱긋 웃어 보인다. 어느 배우의 아름다운 미소로도 흉내낼 수 없는 아름다움 그 자체를 마주하는 느낌이다. 이제 한 40을 갓 넘긴 것 같은 나이의 아주머니에게서 이런 느낌을 받는 것은 내가 사춘기 소년 같은 느낌이 있어서는 아닐 것이다. 32년이라는 짧지만 긴 시간을 살아오면서 내 속에 들어찬 욕심을 말끔히 씻어 주었기 때문이리라.
하루에 한 번씩 만나는 야쿠르트 아주머니의 미소와 당당한 발걸음에서 인간적인 진실이 주는 강한 힘을 느낀다. 아침이면 늘 시달려야 하는 출근길,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부대껴야 하는 기분 상하는 일들, 짧은 시간이지만 이 모든 것을 말끔히 씻어 주는 7월의 푸르름 같은 미소, 그 앞에서 날마다 나는 꿈과 희망을 다시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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