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線)의 미학(美學)

소모적인 인간관계에 지쳤다면 '선 긋기'가 필요합니다. 오늘 나의 이야기는, 자신을 지키는 심리적 경계 설정의 중요성을 개인적 체험과 성찰을 통해 풀어내었습니다. 플라타너스의 비유처럼, 건강한 거리두기를 통해 진정한 나를 찾는 '선의 미학'에 대한 명상적인 수필입니다.


선(線)의 미학(美學)



선(線)의 미학(美學)


창가에 앉아 교정(校庭)의 늙은 플라타너스를 바라보노라면, 저 넉넉한 나무들이 어찌 저리도 제자리를 굳건히 지키며 서로의 하늘을 침범하지 않는지 새삼 경이로울 때가 있습니다. 가지들은 바람결에 흔들리며 이따금 스칠지언정, 결코 서로를 얽어매어 그늘을 드리우거나 숨을 조이지 않습니다. 그 의연하고도 적요(寂寥)한 간격 속에 저마다의 생(生)이 온전히 뿌리내리고 무성히 잎을 피워 올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비단 초목(草木)의 세계에만 해당되는 미덕은 아닐 것입니다. 인연(因緣)이라 부르는 사람의 관계 속에서도, 우리는 때로 타인의 온기에 기대려다 그만 그 무게에 짓눌리기도 합니다. 정(情)이라는 이름으로 건네오는 살가운 관심이, 때로는 담쟁이덩굴처럼 나의 벽을 온통 뒤덮어, 나 자신의 고유한 빛깔과 숨결을 바래게 만드는 것을 느낍니다.


저에게도 그런 벗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는 학문에 대한 열정은 실로 뜨거웠으나, 그 열정을 쏟아내는 방식이 때로는 거침이 없었습니다. 그는 나의 고요한 사색의 시간을 아랑곳하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연구실 문을 두드려, 밤이 깊도록 자신의 견해와 고뇌를 쏟아내곤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학문을 논하는 벗이 있다는 기쁨과 그 열의가 가상하여 묵묵히 찻잔을 나누었으나, 차츰 나의 책상 위에 쌓인 미완(未完)의 원고와 미처 펼쳐보지 못한 서책(書冊)들이 무언의 원망을 보내는 듯했습니다. 그의 방문이 잦아질수록, 정작 나의 내면은 맑은 샘물이 마르듯 고갈되어 갔습니다. 그의 뜨거운 이야기는 나의 사유를 채우기보다, 도리어 나의 것을 어지러이 밀어내고 있었습니다.


고심 끝에, 저는 그에게 정중히 '나만의 시간'이 필요함을 고백하였습니다. 특정한 시간에만 방문을 청하고, 그 외의 시간에는 연구와 집필을 위해 문을 닫겠노라고 양해를 구했습니다. 그것은 정(情)을 베어내는 매정한 단절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나의 작은 정원을 가꾸기 위한 소박한 울타리였으며, 타인을 맞이하기 전에 나 자신으로 먼저 오롯이 서기 위한 최소한의 '틈'을 확보하는 일이었습니다. 혹자는 이를 야박하다 할지 모르나, 나 자신을 지켜내지 못하는 공허한 마음으로 어찌 타인과 진실된 공감(共感)을 나눌 수 있겠습니까.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저 플라타너스처럼, 서로의 햇빛을 가리지 않을 정도의 아름다운 간격은 필요합니다. 타인을 존중하되 나의 영역을 함부로 내어주지 않으며, 공감하되 휩쓸리지 않는 것. 그 고요하고 단단한 경계, 즉 '선(線)'을 지킬 때 비로소 우리는 서로를 향해 가장 맑은 시선을 보낼 수 있습니다.

나의 울타리 안에서 충만히 가꾼 향기라야 비로소 타인에게도 그윽한 위로가 될 수 있는 법입니다. 소모적인 관계에 얽매여 자신을 잃어버리기보다, 때로는 담담히 물러서서 나만의 뜰을 돌보는 지혜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그 적정한 거리 속에서, 우리는 더불어 살되 홀로 설 수 있는 견실한 자아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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