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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 해설, 뜰 앞의 나무는 이름이 없다: 우리가 잃어버린 '침묵'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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뜰 앞의 나무는 이름이 없다: 우리가 잃어버린 '침묵'에 대하여 침묵 속에서 피어나는 현묘함 1. 원문 도가도 비상도 (道可道 非常道) 명가명 비상명 (名可名 非常名) 무명 천지지시 (無名 天地之始) 유명 만물지모 (有名 萬物之母) 고상무욕이관기묘 (故常無欲以觀其妙) 상유욕이관기요 (常有欲以觀其徼) 차양자 동출이이명 (此兩者 同出而異名) 동위지현 (同謂之玄) 현지우현 (玄之又玄) 중묘지문 (衆妙之門) 2. 해석 도를 도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영원불변한 도가 아니요, 이름을 이름 지을 수 있다면 그것은 영원한 이름이 아닙니다. 이름이 없는 것(無名)은 천지의 시작이요, 이름이 있는 것(有名)은 만물의 어머니라 합니다. 그러므로 늘 욕심이 없으면 그 오묘한 본질(妙)을 보게 되고, 늘 욕심이 있으면 그 나타난 껍데기(徼)만 보게 됩니다. 이 둘은 같은 곳에서 나왔으되 이름만 달리 붙은 것이니, 이를 아울러 현묘(玄)하다 이릅니다. 현묘하고 또 현묘하니, 이는 곧 모든 오묘함이 드나드는 문(門)입니다. 해설: 이름 없는 것들을 위하여 창밖 뜰에 서 있는 늙은 나무 한 그루를 바라봅니다. 우리는 저것을 '나무'라 부르고, 봄이면 피어나는 것을 '꽃'이라 이름 붙입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가 저들에게 이름을 붙여주기 전에도 그것들은 그저 그곳에 그렇게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사물에 이름을 붙이고 정의를 내리려는 것은, 이 광활하고 알 수 없는 우주를 우리의 작은 손바닥 안에 쥐어보려는 가련한 욕심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릅니다. 노자(老子)가 말한 '도(道)'란 결국 이러한 인위적인 구분 너머에 있는, 말로 다 형용할 수 없는 거대한 생명의 숨결 같은 것이 아닐런지요. 우리는 너무나 많은 이름 속에 파묻혀 살아갑니다. 나를 규정하는 직함, 남들이 나를 평가하는 평판, 그리고 내가 세상에 내보이고 싶은 모습들... 그러한 '이름(名)'과 '욕심(欲)'이라는 ...

왜 우리의 삶은 고통일까? 쇼펜하우어의 시선으로 바라본 인간의 고뇌 - 나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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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이 왜 고통인지, 그 근원은 무엇인지 궁금하신가요?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우리의 삶과 고통의 본질에 대해 깊이 있는 통찰을 제시합니다. 그의 대표작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통해 인간 존재의 본질을 이해하고, 고통에서 벗어나는 지혜를 함께 찾아보세요. 동양과 서양 철학의 만남을 통해 현대인의 실존적 고민을 해결하는 힌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왜 우리의 삶은 고통일까? 쇼펜하우어의 시선으로 바라본 인간의 고뇌 여러분. 오늘은 우리 모두가 한 번쯤 던져봤을 질문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왜 살아가는 게 이렇게 힘들까? 이 물음에 대해,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아주 흥미로운 답을 제시했답니다. 여러분, 배가 고파서 밥을 먹고, 외로워서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는 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죠. 하지만 우리는 왜 배가 고픈지, 왜 외로움을 느끼는지 그 이유를 정확히 알지 못해요. 그저 '원래 그런 거니까' 하고 받아들일 뿐이죠. 쇼펜하우어는 바로 여기에서 인간 고통의 근원을 발견했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해요. 마치 선글라스를 끼고 세상을 보는 것처럼, 우리의 인식이라는 특별한 렌즈를 통해서만 세상을 바라볼 수 있죠. 예를 들어, 우리가 보는 꽃의 빨간색은 실제 꽃의 색이 아니라 우리 눈이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해석된 색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시간과 공간이라는 틀로 세상을 나누어 본다는 거예요. 그래서 '나'와 '너'를 다른 존재로 인식하고, 서로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쇼펜하우어는 이것이 우리의 착각이라고 말합니다. 실제로는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거예요. 마치 불교에서 말하는 '나와 남이 둘이 아니다'라는 가르침과 비슷합니다. 이런 착각 때문에 우리는 고통받습니다. 나와 다른 사람을 분리된 존재로 보기 때문에 외로움을 느끼고, 경쟁하고, 다투게 되는 거예요. 하지만 쇼펜하우어는 희망적인 메시지도 전합니다. 예술을 통해, 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