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펜하우어의 "인간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지만, 원하는 것을 원할 수는 없다"는 명언, 그 깊은 의미를 생각합니다. 50대 아버지가 20대 딸에게 사랑과 지혜를 담아 전하는 인생 교훈. 욕망의 근원을 성찰하고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며, 주어진 삶에서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방법에 대한 조언을 담았습니다.
내 딸에게 보내는 편지: 원하는 것을 원하는 마음이 중요하단다
사랑하는 딸아,
네가 스무 해를 조금 넘게 살아온 지금, 세상은 온통 선택의 기회들로 가득 찬 광활한 들판처럼 보이겠지. 무엇을 전공할지, 어떤 사람들을 만날지, 어떤 길을 걸어갈지, 매 순간 크고 작은 결정들이 너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아빠도 네 나이 때 그런 설렘과 동시에 알 수 없는 불안감 속에서 수많은 고민을 했던 기억이 새롭구나.
오늘 아빠가 네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오래전 한 철학자가 남긴 감동적인 선언에 관한 것이란다. 독일의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는 "인간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 수는 있지만, 원하는 것을 원할 수는 없다"라는 말을 남겼지. 처음 들으면 조금은 아리송하게 들릴 수 있는 이 문장이지만, 네가 앞으로 살아갈 인생에서 중요한 지혜를 줄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인간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다"는 말의 의미는 비교적 명확하지. 우리에게는 의지가 있고, 그 의지에 따라 행동할 자유가 있다는 뜻이다. 네가 만약 그림을 그리고 싶다면 그림 도구를 사서 그림을 그릴 수 있고, 여행을 떠나고 싶다면 계획을 세워 실행에 옮길 수 있지. 이것은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행동의 자유'에 해당 한단다. 네가 마음먹은 바를 실천에 옮길 수 있는 능력, 그것이 바로 이 명제의 앞부분이 뜻하는 바이지. 지금 네가 어떤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향해 노력하는 모든 과정이 바로 이 '원하는 것을 하는' 모습일 게다.
하지만 쇼펜하우어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원하는 것을 원할 수는 없다"고 말했단다. 이것이 바로 이 명언의 핵심이자 우리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지점이다. 이 말은 우리가 어떤 것을 '원하게 되는' 그 마음 자체는 우리 의지대로 선택할 수 없다는 의미란다. 왜 너는 다른 것이 아닌 바로 그것을 원하게 되었을까? 왜 어떤 사람은 명예를 갈망하고, 다른 사람은 평온한 삶을 추구할까? 이러한 근원적인 욕구나 갈망은 마치 우리 안에 미리 심어진 씨앗과 같아서, 우리가 의식적으로 "나는 지금부터 A가 아닌 B를 원해야지"라고 결심한다고 해서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지.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는 우리의 타고난 기질, 성격, 우리가 자라온 환경, 경험, 심지어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무의식의 영역까지 수많은 요소들의 복합적인 결과로 나타 난단다. 마치 어떤 사람은 매운 음식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단것을 좋아하듯이, 우리의 '선호'나 '갈망'은 이미 우리 안에 어떤 형태로든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지. 이것은 우리가 로봇처럼 프로그래밍 되었다는 숙명론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란다. 오히려 우리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여야 해.
딸아, 이 말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첫째는 자기 이해의 중요성이란다. 내가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그 욕망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 깊이 성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단다. 때로는 사회가 주입하는 성공의 기준이나 타인의 시선 때문에 자신이 원하지도 않는 것을 열망하며 살아갈 수도 있어. 하지만 '원하는 것을 원할 수 없다'는 말은, 결국 나의 본질적인 모습, 나의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 준단다. 네 안에서 자연스럽게 피어오르는 관심사와 열정이 무엇인지 발견하고 그것을 존중하는 것이야말로 너다운 삶을 살아가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둘째는 겸손과 수용의 자세란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 즉 나의 근원적 욕망의 형성 과정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모든 것을 내 의지대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때로는 오만함이 될 수 있고, 스스로를 불필요한 좌절감에 빠뜨릴 수 있단다. 물론, 우리는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나쁜 습관을 고치려고 애써야겠지. 하지만 그것은 이미 존재하는 나의 '원함'을 어떻게 다루고 조절하며 실현해 나갈 것인가의 문제이지, 그 '원함' 자체를 완전히 새롭게 창조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차원이란다.
셋째, 그런데도 우리에게는 여전히 '행동의 자유'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비록 우리가 원하는 바를 마음대로 선택할 수는 없지만, 그 원하는 바를 어떻게 추구할지, 어떤 방식으로 실현할지에 대해서는 우리에게 선택권이 있단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강한 성취욕을 타고났다고 해보자. 그 성취욕 자체는 선택한 것이 아닐지라도, 그것을 이기적인 방식으로 풀어나갈지, 아니면 공동체에 기여하는 방식으로 실현할지는 그 사람의 의지와 선택에 달려 있단다. 네 안에 어떤 강한 열망이 있다면, 그것을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방향으로 끌어 나가는 지혜가 필요하겠지.
사랑하는 내 딸아. 쇼펜하우어의 이 말은 우리를 무력하게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고 삶의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가도록 돕는 등불과 같단다. 네가 무엇을 원하는지 깊이 들여다보고, 그 마음이 어디에서 왔는지 깊이 생각하며, 주어진 여건 속에서 최선의 길을 선택해 나가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네가 어떤 선택을 하든, 어떤 길을 가든, 아빠는 항상 너를 믿고 응원할 것이다. 너의 '원함'이 너를 행복으로 이끌기를, 그리고 그 과정에서 너 자신을 더욱 사랑하게 되기를 진심으로 기도하마.
너를 사랑하는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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