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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에르케고르, 우리는 모두 절망 속에 살고 있다 - 나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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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에르케고르의 철학을 통해 인간의 실존과 절망을 탐구하는 에세이를 요약하였습니다. 유한성과 무한성 사이의 갈등, 절망의 불가피성, 그리고 이를 극복하는 방법을 논하며, 현대 사회에서 실존적 삶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키에르케고르, 우리는 모두 절망 속에 살고 있다 당신은 지금 행복한가? 아니면 절망 속에 빠져 있는가? 사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키에르케고르에 따르면 우리 모두는 이미 절망이라는 병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19세기 덴마크의 철학자 쇠렌 키에르케고르는 인간의 실존 문제에 천착했던 사상가였다. 그는 당시의 주류 철학이 추구하던 보편적 진리나 거대 담론에 반기를 들고, 개인의 구체적인 삶과 내면의 진실에 주목했다. 그가 보기에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면서도 무한을 꿈꾸는 모순적인 존재였다. 우리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 속에 살아가면서도, 끊임없이 그 한계를 넘어서려 한다. 이러한 갈등 속에서 인간은 필연적으로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키에르케고르의 통찰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절망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키에르케고르는 그 해답을 신앙에서 찾았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신앙은 당시의 제도화된 기독교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개인이 홀로 신 앞에 서서 자신의 실존을 마주하는 것이 진정한 신앙이라고 보았다. 이는 쉽지 않은 도전이다. 하지만 바로 그 도전 속에서 우리는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고, 절망을 넘어설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 키에르케고르의 사상은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한다. 첫째, 우리는 자신의 유한성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완벽할 수 없으며,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무한을 향한 열망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이 모순적인 상황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 바로 실존의 핵심이다. 셋째, 이 과정은 고통스럽고 두려운 것일 수 있지만, 바로 그 고통과 두려움을 통해 우리는 성장한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종종 이러한 실존적 고민을 회

키에르케고르의 실존주의: 불안과 신앙 사이의 철학적 여정 - 나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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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주의는 20세기 철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조 중 하나로 꼽힙니다. 그 중에서도 덴마크의 철학자 쇠렌 키에르케고르(Søren Kierkegaard)는 실존주의의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오늘은 키에르케고르의 생애와 그의 철학적 사상에 대해 깊이 있게 살펴보려 합니다. 키에르케고르의 실존주의: 불안과 신앙 사이의 철학적 여정 키에르케고르의 생애와 철학적 배경 키에르케고르는 1813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가정환경은 그의 철학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아버지는 우울증과 죄의식에 시달렸고, 가족들의 조기 사망으로 인해 키에르케고르 역시 33세를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에 시달렸습니다. 이와 같은 불우함 속에서 자란 키에르케고르는, 자신의 철학을 통해 인간 실존의 세 가지 단계를 제시했습니다: 심미적 실존, 윤리적 실존, 종교적 실존. 이 세 단계는 그의 개인적 경험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첫째, 심미적 실존 단계 심미적 실존 단계는 쾌락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단계입니다. 키에르케고르는 대학 시절 이 단계를 경험했습니다. 그는 신을 버리고 방탕한 생활을 했지만, 결국 만족을 얻지 못했습니다. 이 단계에서 인간은 끊임없이 새로운 쾌락을 찾아다니지만, 진정한 만족을 얻지 못합니다. 둘째, 윤리적 실존 단계 윤리적 실존 단계에서 인간은 도덕적 가치와 사회적 책임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키에르케고르는 레기네 올센과의 약혼 기간 동안 이 단계를 경험했습니다. 그는 윤리적으로 바르게 살기 위해 노력했지만, 여전히 불안감에 시달렸습니다. 이 단계에서 인간은 자신의 불완전함을 더욱 깊이 인식하게 됩니다. 셋째, 종교적 실존 단계 종교적 실존 단계는 키에르케고르 철학의 핵심입니다. 이 단계에서 인간은 신앙을 통해 실존적 불안과 절망을 극복하려 합니다. 키에르케고르는 레기네와의 파혼 후 이 단계로 진입했습니다. 그는 기독교에 헌신하며 덴마크 교회의 형식주의를 비판하는 글을 썼습니다. 키에르케고르의 주요 철학적 개념 첫째, 불안과 자유 키에르케고르에게

다시 걸음마를 배우자 - 강길용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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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어려움, 정치인과 권력층의 부패, 가족 해체 등의 문제로 인해 희망이 사라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말고 갓난아이처럼 새로운 시작을 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어린 시절의 희망과 의지를 되찾아 다시 일어서 힘차게 웃을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다시 걸음마를 배우자 겨울 날씨 답지 않게 영상의 기온을 유지하고 있다. 예년 같으면 따뜻한 분위기를 피부로 절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올해의 겨울이 보기 드문 온기(溫氣)로 가득함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현실은 실로 차가운 동토(凍土)와 다름이 없다. 숱한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어머니와 딸들이 험난한 세상 속으로 휘말리고 있다. 마음의 겨울은 계절의 변화에 따른 겨울의 추위보다 더 절박하게 동결(凍結)로 다가온다.  또 희망찬 전주곡을 울리며 시작했던 대통령 당선자의 나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오랜만에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를 이루었다는 자부심도 얼어붙은 가슴을 녹이지 못하고 있다. 화려한 경제지표로 장식하던 방송과 신문의 치장도 볼 수 없다. 어디를 둘러봐도 희망이라는 단어를 찾아지지 않는다. 언제 자신이 거리로 내몰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춤츠러든 가슴은 좀처럼 열릴줄 모른다. 서로가 제 몫을 챙겨 곳간을 늘이려 발버둥친다.  이렇게 허망한 가슴을 들여다보면 어김없이 약속과 믿음이 비어있다. 정부는 날마다 대책을 내 놓는다고 하지만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만한 이유는 충분히 있다. 어렵다는 말을 하면서, 허리띠를 졸라매라는 말을 하면서, 정작 허리띠를 졸라매야 할 주체들은 여전히 제멋대로 행동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는 어떤 사람들인가.  남들이야 길거리에서 굶주리며 죽어 가든지, 직장을 잃어 방황하는 사람들이 늘어가든지 '내 알 바 아니라'는 듯이 흥청거리는 부류들이 있다. 가장 큰 책임을 느껴야 할 고위 공무원들, 국회에서 법률심의 하나 제대로 못하고 언성만 높였던 한량들, 남의 아이는 절망에 빠져 있거나 말거나 내 아이만 잘 되면 된다는 식의 이기적이고 오